호기심과 감정을 가진 생명, ‘소’의 짧은 삶 이야기
오늘의 식탁 위에 한 생명의 희생이 있었음을 깨닫게 하는 책
손질된 고기를 먹을 때, 우리는 그 고기를 내어 준 동물이 한때 생명을 가진 존재였음을 인식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그들의 삶은 어땠는지 떠올려 본 적 있을까요?
『나는 소고기입니다』는 한 소가 세상에 태어나 고기가 되어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따라가 보는 수필 같은 이야기입니다.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반가움, 두려움 등 감정을 가진 소의 담담한 목소리, 소의 시선에 비친 풍경을 통해 농장 동물의 짧은 삶을 함께 체험해 보게 합니다. 책장을 덮으면 오늘의 식탁에 한 생명의 희생이 있었음을 깨달으면서 마음에 조용한 파문이 일렁입니다. 책 뒷부분에는 소의 탄생에서부터 고기가 되기까지의 삶이 여덟 단계로 나뉘어 간단한 정보로 담겨 있습니다.
훌륭한 고기가 되기 위해 살아온 소의 일생
여기, 평생 고기가 되기 위해 살아가는 소가 있습니다. 『나는 소고기입니다』의 화자인 소는 꽃향기가 바람에 실려 날리던 어느 봄날, 한 소 농장에서 건강한 사내아이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지 며칠 뒤에 단 노란색 귀표 속 숫자가 이제부터 소의 주민 등록 번호이자 이름입니다. 생의 마지막까지 귀표를 달고 있어야 하지요.
소가 할 일은 온종일 잘 먹고, 쉬면서 무럭무럭 덩치를 키우는 것뿐입니다. 소는 밥 주러 온 사람을 반기고, 인사하러 온 아이의 부드러운 손길을 익숙하게 즐깁니다. 그러면서 축사 바깥의 삶을 궁금해합니다. 아이와 강아지가 풀밭에서 해맑게 내달리는 풍경에 소의 시선이 머무릅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송아지는 어른이 되고, 다른 어른 소들이 그랬던 것처럼 차에 실려 가 마침내 고기가 됩니다. 신선하고 맛 좋은 소고기는 식탁에 올라 사람들의 살이 되고, 몸을 움직이는 에너지, 그리고 가족들의 행복한 시간이 됩니다.
『나는 소고기입니다』는 채식을 하자거나 모든 소를 자연 방목하여 키우자고 목소리 높이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소가 고기가 되어 식탁에 오르기까지 일생을 담담한 목소리, 파스텔톤 그림을 통해 함축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맛있는 고기 요리가 어떤 생명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한 번쯤 생각해 보자고 권유합니다. 고기는 원래부터 고기였던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숨 쉬던 생명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오늘날의 식탁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전과는 달라질 것입니다.
“울타리 바깥 풍경은 뭔가 달라 보여요.
막 뜯어 먹은 풀은 어떤 맛일까요?
언덕에서 뛰놀면, 마음껏 햇볕을 쬐면 어떤 기분일까요?”
아름다운 풍경 속에 겹치는 소의 작은 꿈
동물복지 축산 농가에서는 운동장을 두어 소들이 일정 시간 햇빛을 받으며 운동하도록 하고, 일반 사료 대신 유기농 조사료를 직접 경작해서 먹이는 등 소가 행복한 농장을 만들고자 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럴 수는 없는 게 현실입니다. 책 속의 소처럼, 평범한 소들은 축사에서 살다 도축장으로 향하며 낯선 바깥세상을 마주합니다. 소는 거실이자 방이고, 화장실이자 놀이터인 축사에서 먹고, 자고, 싸고, 놀면서 어른이 되어 갑니다. 훗날 좋은 고기로 평가받기 위해 생애 주기에 맞춰 뿔이 뾰족하게 자라지 못하게 하는 ‘제각’을 하고 풀과 곡물 사료를 먹으며 덩치를 키웁니다.
평생을 고기가 되기 위해 살아온 소는 그 삶의 목적에 맞게 결국 맛있는 고기가 되어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이 됩니다. 또한 둘러앉아 식사하는 동안 사람들을 화합하게 합니다. 끝이 정해진 이야기일지라도, 책의 분위기가 어둡고 우울하지는 않습니다. 소들은 봄을 맞이해 푸릇하고 화사한 농촌 배경 속 은은한 노란빛을 띠며, 저마다 부드럽고 유려하며 다채로운 색상의 곡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을 온화하게 해 주는 그림 속 소의 맑은 눈을 바라보노라면 그가 비록 허구의 존재이지만 이야기 내의 짧은 생에서 조금이라도 고생스럽지 않았길, 희생에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품게 됩니다.
책의 마지막, 꿈결처럼 아름다운 들판에서 송아지는 무슨 생각을 하며 미소 짓고 있을까요? 그리고 송아지의 다정한 눈길 끝에 누가 서 있을까요? 아름답고도 가슴 저릿한 그림책, 『나는 소고기입니다』를 통해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동물의 삶, 또 경중을 가릴 수 없는 생명의 가치에 대해 가만 돌이켜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볼수록 좋고, 또 슬픈 그림책입니다. ‘맛있겠다!’, 깔끔하게 포장되어 진열된 소고기를 보면 떠오르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고기를 고르면서 행복한 시간을 꿈꿉니다. 한편 소는 채끝, 안심, 등심 등 죽어서 해체된 이후에야 비로소 ‘이름’을 가집니다. 사람처럼 어미가 열 달을 품어 산고 끝에 한 마리가 태어나며, 겅중겅중 뛰놀던 어린 시절이 있었는데 말이지요. 비록 언젠가 사람을 위해 죽더라도, 소가 사는 동안만큼은 맑은 눈망울에 언덕 너머 풍경을 담고, 촉촉한 코로 들판의 향기를 마음껏 맡으며 살도록 해 줄 수 없을까요?
_전진경 동물권행동 카라 대표
인간과 동물 사이의 벽만큼이나 오래된 벽이 있습니다. 바로 동물과 고기 사이의 벽입니다. 불판 위에서 지글대는 빨간 고기와 들판을 꿈꾸며 기뻐하고 또 슬퍼하는 소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감추고 살아왔습니다. 『나는 소고기입니다』는 그 벽을 허무는 아름다운 망치질이 될 것입니다.
_한승태 제59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 교양 부문 수상작 『고기로 태어나서』 저자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주식인 쌀과 자연, 농부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배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먹는 소고기도 그저 음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한때 살아 있던 생명이고 감정과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존재였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이 사실을 생각하며 식탁 위의 음식을 바라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간극은 클 것입니다.
_박주연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PNR) 이사·변호사·『물건이 아니다』 저자
글 김주연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어린이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어린이들과 수다 떨기, 강아지와 숨바꼭질하기, 낯선 나라 여행하기를 좋아합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떠올릴 만큼 어린이의 마음에 길이 남는 책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그림 경혜원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그림책을 짓고 있습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 『나와 티라노와 크리스마스』 『커다란 비밀 친구』 『나는 사자』 『쿵쿵』 『한 입만』 『엘리베이터』 등이 있으며 『공룡 엑스레이』로 2018년 대만 오픈북어워드에서 수상하였습니다. 『까먹어도 될까요』 『사서가 된 고양이』 『금순이가 기다립니다』 등에 그림을 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