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로스

  • 지은이: 이필원

아름다운 등대섬 사숙도에 모인 세 존재의 상실과 고독,

그리고 서로의 존재를 통해 발견한 애도의 힘과 미래로 나아갈 용기

 

소녀, 내일이 되다! 청소년을 위한 SF 시리즈, ‘내일의 숲’ 열세 번째 책 『파로스』는 제5·6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우수작을 수상한 이필원이 오랜만에 내놓은 SF 청소년 소설이다. 작가는 개체와 개체 사이에 떠도는 소중한 감정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유심히 관찰해 왔다. 그리고 그 호기심 많고 다정한 시선을 장착한 채로 『파로스』에서 그 자체로 귀중한 타자의 존재 가치를 포착한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아름다운 등대섬을 배경으로, 서로를 통해 비로소 떠나보낸 이를 애도하고 희망을 찾는 세 주인공의 모습이 서정적으로 그려진다.

벌써 90일째, 정민은 사숙도 등대에서 홀로 지내고 있다. 바다에서 올라온 괴생명체의 습격과 함께 사라져 버린 언니를 기다리며. 밀려드는 고독감에 바다 건너를 그리워할 무렵, 두 존재가 섬으로 흘러든다. 유람선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다 바다로 침몰한 로봇 주주, 그리고 불타는 전투기에서 탈출해 불시착한 공군 근영. 셋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비로소 떠나보낸 이들을 추모하고 새날을 도모한다.

공간을 통해 극대화되는 고독과 상실의 공포

소중한 이를 잃었을 때의 망연함과 허무는 겪어 보지 않고는 알기 어렵다. 심지어 상실로 인해 이 세상에 혼자 남았다면 그 공포는 상상 이상일 것이다. 『파로스』는 어떤 말로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상실에 대한 아픔과 그에 동반하는 깊은 고독을 상징적 공간과 촘촘히 꿰어 숨 막힐 듯 생생히 묘사한다.

주인공 정민은 언니 유민의 실종 이후 외부와의 모든 연락이 끊긴 채 작은 섬 사숙도의 등대에서 홀로 지낸다. 유민과 함께하던 사숙도라는 공간은 계속해서 정민에게 유민의 부재를 상기시키고 고독감을 증폭시킨다. 정민은 몸을 움직이려 과장되게 무릎을 들어 올리며 걷고, 유민의 환청을 듣고, 혼잣말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런 온갖 몸부림에도 고요하고 기척 없는 바다는 정민이 놓인 상황을 몸서리쳐지도록 실감 나게 만든다.

한편 정민과 마찬가지로 주주, 근영은 각기 다른 공간에서 소중한 이를 잃어버리고 등대로 흘러든다. 주주와 근영의 상실은 각각 바다와 하늘 한가운데에서 이루어진다. 유람선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로봇 주주는 배가 난파되어 망망대해에 홀로 표류했고, 전투기 조종사 근영은 동료를 모두 잃고 드넓은 하늘 위에서 홀로 비행해야 했다. 광막한 공간을 배경 삼아 혼자 남은 이들의 모습은 별다른 말이나 행동 없이도 그 자체로 고독이라는 감정을 표현한다.

이들의 체험에 동참함으로써 독자는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겪게 될 상실에 공감하고 내면의 고독을 정면으로 마주할 힘을 얻는다. 『파로스』는 고독을 들여다보는 것이 단순히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라,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하고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중요한 경험임을 일깨운다.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더 나다운 내가 되기

주주는 정민에게 자신의 추억이 담긴 노래 <Beyond the sea>를 반복 재생해 들려준다. 그리고 바다 너머의 소중한 이를 그리는 이 노래와 함께 정민은 유민을 마침내 떠나보낸다. 이제 정민은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유민이 좋아하던, 사라진 파로스 등대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사숙도 등대임을 안다. 유민은 항상 정민에게 강해지라고 했지만, 정민은 자신이 유민의 방식으로 강해질 수 없음을 안다. 정민은 바다 너머에서 온 주주와 근영의 존재로 인해, 바다 너머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믿었던 유민을 애도하고, 이제는 바다 너머의 새 사람들을 맞이하기로 한다. 유민을 따라 수습 등대원이 되었던 정민은 그렇게 비로소 사숙도 등대의 정식 등대원이 될 준비를 끝낸다.

등대에 모인 이들에게 상실을 안겨 준 건 심해에서 올라온 괴생명체다. 육지에서는 투명해지고 전자기파를 무력화하는 이 괴물은 불가해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상실의 늪에 빠뜨렸다. 그러나 이제 사숙도 등대와 여기 모인 사람들을 사랑하겠다는 다짐으로 무장한 정민은 더 이상 부조리 앞에 무력하지 않다. 주주와 근영을 통해 알게 된 희망을 섬 바깥의 생존자들에게도 전하겠다는 마음으로, 정민은 괴생명체에 맞설 작전을 세운다. 근영 또한 정민으로부터 용기를 얻고 작전에 동참하기로 한다.

이렇게 서로가 곁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그저 인지하는 것만으로 이들은 사라진 것을 애도하고 미래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작전이 끝나면, 주주도 이제 몇 번이고 반복해 재생하던 <Beyond the sea> 대신 다른 노래를 들려줄 것이다. ‘이제 사랑이든 희망이든 바다 너머에만 있는 게 아니’(128쪽)라, 지금 여기, 사숙도 등대에 가장 충만할 테니까.

벌써 90일째, 정민은 사숙도 등대에서 홀로 지내고 있다. 바다에서 올라온 괴생명체의 습격과 함께 사라져 버린 언니를 기다리며. 밀려드는 고독감에 바다 건너를 그리워할 무렵, 정민은 해안에서 로봇을 하나 발견하고 작동시킨다. 음성 언어 출력 기능을 상실한 로봇은 모래사장에 글씨를 써 자신의 이름을 알려 준다. ‘주주’. 정민의 곁을 지키며 음악을 들려주는 주주는 점차 정민에게 소중한 존재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주주가 수첩에 적은 문장을 보고 정민은 공황에 빠지고 마는데…….

생존자

발견

말 없는 로봇

배 위의 피아니스트

비밀과 진실

불시착한 조종사

전투 준비

타종

빛을 따라서

작가의 말

SF를 사랑하는, 소녀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에 가슴 뛰는 독자들에게 선물 같은 시리즈 ‘내일의 숲’. 내일을 바라보는 청소년 SF 독자들을 위한 글들이 시리즈 이름처럼 풍성한 숲을 이루길 고대한다. -구한나리(소설가)

‘내일의 숲’ 시리즈는 과학기술의 시대를 살아가는 주체로서의 여성에 주목한다. 사근사근한 로봇 안내원 여성,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친절하고 상냥한 기계 목소리의 비인간화된 여성을 넘어, 생각하고 행동하는 주체로서 인간 여성이 과학기술의 시대와 어떤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어떻게 타자화의 벽을 넘어서야 할지 보여 주는 용기 있는 시리즈다. -정보라(소설가)

지은이 이필원

고양이 집사. 단편소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코너를 달 리는 방법』, 『거기, 있나요?』, 『슈가 타운』, 소설집 『지우개 좀 빌려줘』, 장편소설 『가족복원소』를 썼고, 앤솔러지 『푸른 머리 카락』, 『데들리 러블리』 등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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