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제: ELLES
- 지은이: 소피 리갈 굴라르
- 옮긴이: 이정주
- 출판일: 2021/10/29
- ISBN: 979-11-6051-425-4 (43860)
- 가격: 12,000원
- 크기: 150×210mm
- 연령: 푸르른 숲 (청소년)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에 가시를 세우고 사는 그녀들 이야기
2020 유니세프상 수상 작가 소피 리갈 굴라르의 청소년 장편 소설로, 부모에게 상처받은 두 여성의 회복과 연대의 이야기다. 이혼 후 알코올 중독에 빠져 버린 엄마와 어린 동생을 돌보며 냉소적인 성격으로 변한 중2 ‘마리나’, 그리고 아빠의 언어폭력에 마음의 문을 닫고 책 속으로 도피해 살아온 사서 ‘쥐스틴’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로 교차한다.
따뜻한 가정의 울타리에서 보호받지 못한 채 애어른이 되어 버린 마리나의 어둡고 혼란스러운 내면, 그런 마리나에게서 자신의 옛 모습을 발견하고 고통받지만 같은 과거가 반복되지 않길 바라며 밝은 세상으로 이끄는 쥐스틴의 고민과 심경 변화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의지하고 싶지만 때로는 떨쳐 버리고 싶은 존재, 부모
보이지 않는 학대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청소년들을 위하여
아이들에게 부모는 어떤 존재일까?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세상 사는 법을 일러 주는 어른,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쉬어 가는 언덕이자 보호하는 울타리가 되어 주는 사람들……. 안타깝게도 그런 이상적인 부모는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고슴도치 그녀들』에 나오는 부모들은 서로를 원망하고, 술에 빠져 살고, 폭언으로 상처 주거나 자녀를 향한 배우자의 정서 학대를 방관한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그런 부모 아래서 마음을 다친 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가시를 세우고 살아간다. 『고슴도치 그녀들』은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 동생과 함께 달라진 삶을 살게 된 중학생 마리나와, 어린 시절 아빠의 정서 학대로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온 중학교 사서 쥐스틴의 담담하고 때론 격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망을 향한 발걸음을 보여 준다.
마리나는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는 엄마를 ‘그녀’라고 부른다. 술에 취해 무너진 엄마를 혐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지키고 싶어 한다. 이혼으로 삶의 좌표를 잃은 데다 해고까지 당한 엄마는 집 안 곳곳에 술병을 감춰 둔다. 가정에 소홀한 엄마 대신 음식 가격을 따져 가며 냉장고를 채우고 동생을 돌보는 건 마리나의 몫이다. 여전히 사이 나쁜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동생의 다친 마음을 보듬고, 학교에도 보낸다. 하지만 마리나는 이제 중2다. 이 십 대 소녀는 기댈 곳이 없다. 전학 간 곳에서 진심을 나눌 친구를 만들지 않고, 예전 단짝은 행복한 추억을 떠오르게 하기에 거리를 둔다. 그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고 동생을 위로하며, 만취한 엄마를 증오하면서 챙기는 나날이 반복된다.
이런 마리나를 알아본 사람은 학교 도서관의 사서, 쥐스틴이다. 쥐스틴은 언어폭력을 일삼았던 아빠를 ‘그’라고 부른다. 아빠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쥐스틴은 특히 외모를 조롱했던 아빠 탓에 집 안의 거울을 모두 없애 버리고 투명 인간처럼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 조용히 살아왔다. 아빠의 가스라이팅으로부터 언니도, 엄마도 쥐스틴을 구해 주지는 않았다. 나중에야 알게 되지만 그들 역시 피해자였던 것이다. 외딴섬처럼 고립된 쥐스틴은 책을 도피처로 삼았다. 책만이 그녀를 위로하고 구원해 줬다. 중학교 사서가 된 쥐스틴은 학생들에게 좋은 책을 추천하고 책들에 둘러싸인 삶이 그런대로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전학생 마리나를 만나면서 괴로운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쥐스틴은 과거를 청산한 줄 알았는데, 더러움을 양탄자 밑에 대충 감추기만 했을 뿐이란 걸 깨닫는다.
“왜 지금이냐고? 내 유령을 만났기 때문이야.
내 십 대 때와 똑같은 분신을 봤어. 그 아이가 망가지게 놔두지 않을 거야.”
작가는 깊은 수렁 밑바닥에 두 사람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이제 바닥을 박차고 수면 위로 올라갈 시간. 내면을 뒤흔드는 잔인한 기억에 아파하면서도 쥐스틴은 마리나가 자신처럼 수치심, 분노, 슬픔으로 가득한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길 바라며 도움의 손을 내민다. 마리나의 고민에 무턱대고 끼어들기보다는 공통분모인 책으로 신뢰를 쌓은 뒤, 성탑 꼭대기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위협하는 용들과 맞서 싸우도록 독려한다. 이제 마리나는 알코올 중독인 엄마를 자기 힘으로 제어할 수 없으며 이 현실을 영원히 혼자만의 비밀로 둘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 책은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아물지 않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다시 헤집고 봉합하는 쥐스틴의 고통스러운 치유 과정, 굳건히 두 발로 버티어 서고 싶지만 아직은 부모 품에서 사랑받고도 싶은 마리나의 복잡한 심리를 매우 집요하고, 또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별것 아닌 다정한 말에 자기도 모르게 눈물 흘리고, 찰나의 엄마다운 모습을 보며 행복함과 동시에 불안함을 느끼는 마리나가 보는 사람의 가슴을 저민다.
마리나는 자조적으로 말하던 ‘거지 같은 삶’ 속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미래를 향한 문으로 한 걸음 다가선다. “우리는…… 살고 싶어요.”라는 마지막 문장은 막막한 현실, 그럼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아이들의 절절한 외침이다.
9월 4일 마리나 …… 9
9월 4일 쥐스틴 …… 20
9월 20일 마리나 …… 26
10월 9일 쥐스틴 …… 30
10월 13일 마리나 …… 35
11월 7일 쥐스틴 …… 42
11월 15일 마리나 …… 46
12월 14일 쥐스틴 …… 53
12월 25일 마리나 …… 58
1월 11일 쥐스틴 …… 66
1월 23일 마리나 …… 71
2월 25일 쥐스틴 …… 79
2월 29일 마리나 …… 83
3월 7일 쥐스틴 …… 92
3월 11일 마리나 …… 97
4월 22일 쥐스틴 …… 105
4월 23일 마리나 …… 109
5월 8일 쥐스틴 …… 118
5월 8일 마리나 …… 124
5월 10일 쥐스틴 …… 132
5월 11일 마리나 …… 138
5월 12일 쥐스틴 …… 146
5월 12일 마리나 …… 151
지은이 소피 리갈 굴라르
여러 해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지금은 오로지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 상상해서 인물들을 창조하고 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번 소설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진짜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은 책으로 『부모 없는 12일』 『쓰레기 없는 쓰레기통이라고?』 『인터넷 없이도 말짱히 해가 뜨다니!』 등이 있다. 『쓰레기 없는 쓰레기통이라고?』로 2020 유니세프상을 받았다.
옮긴이 이정주
서울여자대학교와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방송과 출판 분야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는 프랑스 책들을 직접 찾아 소개하기도 한다. 옮긴 책으로 『부모 없는 12일』 『내가 개였을 때』 『3일 더 사는 선물』 『진짜 투명인간』 『내 작은 삶에 대한 커다란 소설』 『모자 도시』 등이 있다.
41쪽_ 어렸을 적에는 평생 쓰는 눈물 저장소가 있어서 너무 많이 울면 언젠가 눈물이 영원히 말라 버릴 거라고 생각했다. 잘못 생각했다. 몇 달째 눈물을 몇 리터는 쏟아 낸 것 같은데 내 뺨에 또 흐르는 것을 보면, 눈물 저장소는 전혀 마르지 않는 것 같다.
43~44쪽_ 술판이 벌어지고 나면 쥐스틴은 아버지로부터 언어폭력을 당했다. 파괴적이고 잊히지 않는 말들. 아버지가 쥐스틴을 때린 적은 없다. 그러나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
48쪽_ “누나, 집에 가고 싶지 않아. 여기…… 아빠랑 있을래.”
내 심장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심장이 둘로 쪼개질 것 같았다. 이게 바로 내가 가장 두려워한 일이었으니까. 동생과 내가 헤어지는 일.
62쪽_ 바로 이 순간, 나는 그녀가 싫다. 그들이 싫다. 둘 다. 그와 그녀. 우리 아빠와 엄마는 우리를 낳기로 결정했지만, 그들의 결정을 끝까지 책임지지 않았다.
96쪽_ “왜 지금이냐고? 내 유령을 만났기 때문이야. 내 십 대 때와 똑같은 분신을 봤어. 그 아이가 망가지게 놔두지 않을 거야. 그 애를 도우려면 먼저 나부터 챙겨야 해. 알겠어?”
111쪽_ 그녀는 내게 혐오감을 주고, 동시에 끝없는 고통을 줬다. 나는 마음 깊이 그녀를 증오했지만 내 심장은 그녀를 향한 사랑으로 폭발할 지경이었다. 그녀가 내 인생에서 없어지길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그녀를 지키고 싶었다.
118쪽_ 쥐스틴은 과거의 자신이 새어 나오지 못하도록 꽁꽁 틀어막았다. 반대로 마르탱이 쥐스틴의 과거를 알려고 하면 할수록 쥐스틴은 자신의 기억을 깊숙이 숨겼다.
끝내 마르탱은 지쳐 버렸다. 고슴도치 같은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125쪽_ “엄마, 바니아와 나는 더는 엄마의 사랑둥이들도, 엄마의 새끼들도, 그 무엇도 되고 싶지 않아요. 더는 엄마의 한탄도 듣고 싶지 않아요. 우리는 행동을 원해요. 엄마가 이 반복을 끊기를 원해요.”
141쪽_ 도서관에서 포레스티에 선생님과 나눈 대화가 다시 떠올랐다. 책을 요새로 삼으면 안 되고 ‘진짜’ 삶을 살아야지. 이야기 속으로 도망치면 안 된다는 말이 다시 생각났다.